며칠 전 Current Biology 라는 생물학 저널에 “베토벤의 머리카락 유전체 분석”이라는 신기한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1].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DNA 염기서열화(DNA sequencing)한 결과인데, 생물학과 음악사가 흥미롭게 뒤섞여 있는 내용이라 마치 교양서적을 읽듯 빠져들어 읽었다. 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미국 언론에도 소개되었고 [2]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정리해 본다.
- 연구에서 8종류의 서로 다른 경로로 얻어진 머리카락을 분석하였는데, 그 중 5개의 유전체가 일치하고 유럽 계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어 베토벤의 진짜 머리카락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졌고, 나머지 3개는 불일치했다. 가짜일 것으로 추정되는 3개 중 하나는 베토벤 사망 당시 옆에 있던 음악가 Ferdinand Hiller가 확보했다고 가장 잘 알려져 있던 머리카락(“Hiller Lock”)이었는데 분석 결과 아슈케나지(Ashkenazi) 유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밝혀졌다. Hiller 본인이 유대인이어서 아마 그 집안의 여성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이 Hiller Lock을 독성학(toxicology) 분석하여 베토벤이 납중독이 되었다거나 매독(syphilis)을 앓았다고 주장한 기존의 연구들이 있었는데 Hiller Lock 자체가 가짜이므로 그 연구들 전부 베토벤과 관계 없는 이야기로 밝혀졌다.
- 베토벤의 지인이었던 Anton Halm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무척 갖고 싶어해서(??) 당시 베토벤의 친구이자 비서였던 Karl Holz에게 부탁해서 머리카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베토벤과 Karl Holz가 장난으로 베토벤의 머리카락과 색깔과 질감이 비슷한 염소 수염을 잘라 보낸 것이었다고.. Halm의 아내는 그것도 모르고 머리카락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니다가 사실이 밝혀 졌을때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베토벤이 (미안해서?) 자신의 진짜 머리카락 한 웅큼과 “Das sind meine Haare!”(“That is my hair!”) 라고 적힌 노트를 Halm에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렇게 전해진 머리카락(“Halm-Thayer Lock”)은 진짜 베토벤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진짜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을 균유전체학(metagenomics) 분석한 결과 베토벤이 사망 전 B형 간염에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베토벤의 유전체 자체가 간경변(liver cirrhosis) 등이 발생할 유전적 위험(polygenic risk)이 많게 타고났다고 한다. (PNPLA3 유전자와 관련됨 [3].)
- 현재 살아 있는 van Beethoven 가문의 5명 남성의 Y염색체와 베토벤의 Y염색체를 비교해 보았는데, 5명 남성의 Y염색체는 거의 일치하지만 베토벤의 Y염색체는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록된 문서상으로 이들의 공통된 조상은 베토벤보다 7대 위인 Aert van Beethoven이어야 하는데,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그 7대 사이에 EPP(extra-pair paternity)가 일어났을 확률이 크다고 한다. 쉽게 말해 베토벤의 어머니나 윗 대 할머니들 중 한 분이 정체 모를 남성과 아이를 낳았고 베토벤이 그 자손일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Ludwig van Beethoven이 부계 혈통(paternal lineage) 상으로는 van Beethoven 가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어쩌다 보니 유전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살고 있는데 내가 공부하는 분야의 지식을 이용해서 200년 전 사망한 “최애” 음악가의 삶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1] https://www.cell.com/current-biology/fulltext/S0960-9822(23)00181-1
[2] https://www.washingtonpost.com/science/2023/03/22/beethoven-genome-hair/
[3] https://en.wikipedia.org/wiki/PNPLA3
새 여권
한국에 왔다. 돌아오는데 5년이 걸렸다. 그 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어서 머리속에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거의 매일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권 만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히 깨달아서 새로 발급을 받았다. 최근에 새로 디자인했다는 파란색 새 여권이 예쁘고 여러모로 품질도 더 좋지만, 크게 VOID라고 구멍이 뚫린 전 여권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마치 내 지난 10년의 기억에도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다.
상처난 여권을 열어 책을 읽듯이 처음부터 한장 한장 읽어 본다. 토론토, 이스탄불, 파리, 밴쿠버, 더블린, 퀘벡, 서울,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미국 F1 비자, 미국 H1B 비자, … 누군가가 무심하게 찍어 놓은 도장들일 뿐인데 하나하나의 도장에 떠오르는 기억이 너무 많다. 이 기억들이 점점 흐려지는 것도 슬프고 언젠가 내가 사라지면 이들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슬프다. 세상 모든 이들이 나만큼의 기억을 갖고 있을텐데 이렇게 사라지는 기억들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VOID 라는 단어가 적절하다.
4년이 넘도록 긴 휴가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이직 후에 바쁘기도 했고, 코로나 때문에 더 미뤄지기도 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살았는지 휴가를 갖기 전에는 깨닫지 못 했다.
기후 변화 때문인지 9월인데도 서울이 너무 더웠다. 더운 날씨에는 식욕이 떨어지는 체질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가족들, 친구들에게 좋은 음식들을 많이 대접 받았는데도 몸이 더 마른 느낌이다. 그와 비슷하게 이 곳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래도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명확한 답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는 더 자주 돌아올 생각이다. 마음에 안 드는 점도 많은 나라이지만 나를 정의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는 나라임에도 틀림이 없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이 나라가 바뀌는 것을 계속 몸으로 느끼고 싶다. 어머니와 내 가족이 있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Keywords for 2022
Keywords for 2022 (to be continually updated):
- Prioritize
- Purposeful
- Look around
- Health
- Rediscover
- Classic
-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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