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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기

17Ap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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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근처 노스이스턴 대학에서 수학자 Andrei Zelevinsky의 ‘생일 기념 학회’가 있어서 가 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학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젤레빈스키 교수님이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다며 ‘추모 학회’로 제목이 바뀌어 있다. 세미나에서 한 번밖에 못 뵈었지만 따뜻하고 좋은 분 같았는데 슬픈 일이다.

어제(Patriot’s day)의 보스턴 마라톤 폭발 사건도 그렇고 살아있는 것의 나약함과 죽음의 허망함이 깊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중에는 하루하루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머리속에 이미 정리되어 있는 인물과 줄거리의 전개를 제대로 소설로 만들어 내지 못 하면 아무도 그 작업을 마저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소설이 미완성으로 남는 것이 너무나 원통할 것 같다고. 나도 박사과정 논문 제출을 이주 남기고 있어서인지 비슷한 무서움이 든다. 그래도 5년이나 공부했는데 학위도 없이 졸업논문도 없이 나의 존재가 없어지면 어쩌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논문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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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함과 나태함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5년 전쯤 마지막으로 봤던 것 같은 algebraic topology 책을 오랜만에 들여다보다 든 생각이다.

그 때는 이론의 작은 단계 하나하나를 꼼꼼히, 마지막 하나의 의문까지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공부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더 내 앞에 놓인 지식의 산이 아직 한참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만다. 학회에서 들은 설명 몇 마디로 그 이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고 직접 자세히 확인해보지 않게 된다.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큰 그림을 보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대로 공부하는 단계가 없으면 영영 ‘적당히 아는 사람’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빨라야 하는 것은 더 신속하게, 여유를 두어야 하는 것은 더 느리게.

4분음표는 늘 급하고, 16분음표는 항상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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