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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 맞추기
올 해 새로 시작한 김광민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와 루시드폴의 ‘사람들은 즐겁다’를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고 나서 2주쯤 전부터 (좀 진부하지만) 이적의 ‘다행이다’를 연습하고 있다.
이제 많이 연습이 되어서 노래에 집중해도 반주에 큰 무리가 없는데도 오늘 연주를 하는데 이상하게 무척 노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을 하다가 혹시나 해서 디지털 피아노의 메트로놈을 켜 보았다.
세상에. 나의 박자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어이가 없을 만큼 마음대로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내 손가락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왔던 것은 ‘띵닥닥닥 띵닥닥닥’하고 단순 반복되는 비연속적인 소리의 도움을 받았을 뿐인데 나의 연주와 노래가 말도 안 되게 좋아지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메트로놈을 켜 놓은 채로 서너번쯤 연습을 한 후 다시 메트로놈을 끄고 머릿속으로 그 박자를 떠올리며 연주해 보니 제법 들어줄 만한 음악이 되었다.
참 단순하지만 잊기 쉬운 인생의 진리다. 아무리 화려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한들 적절한 템포를 유지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불안함이 되고 만다.
역주행
갑자기 생각이 나서 훈련소 때 썼던 일기들을 읽어보았다.
(2006. 2. 22. 생일. 논산)
생일이다. 앞으로 생일 하나만 더 지나면… 전역할 수 있다. 생일이라고 괜히 우울해하지 않으련다. 생각을 버리고 몸만 움직이자. 그러면 시간이 빨리 갈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나의 침실 여행’을 생각해 보자. 주위의 사물·사람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총검술 훈련을 시작했다. 총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쓰잘데기 없는 총검술 자세를 하나하나 따라하는데 구분동작으로 멈춰있을 때마다 팔과 손목이 끊어지는 듯 했다. 오늘은 그래서 다들 피곤해한다. 다행히(정말 다행히) 오늘은 불침번이 없더라. 그리고 저녁먹고 간식으로 초코파이가 나왔다. 생일 선물이라 생각하련다. 하하.
아까 분대장에게 오늘 전화 한 통 시켜달라고 얘기는 해 놨는데 될지는 모르겠다.(=> 결국 못 했다) 까먹었으려나… 뭐 아무려면 어떠냐. 앞으로 계속 오게 될 생일이니까. 오늘 하루 아무려면 어떠냐. 쓸데없는 우울함은 버리려 노력중이다. 아까 저녁 땐 사실 좀 우울했다. 생일에 170개 그릇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크.
인간의 적응력은 정말 무시할 수 없다. 나도 여기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손과 발의 살들이 점점 굳어지고 근육이 점점 단단해지다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훈련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과거의 재밌었던 추억으로 남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러리라 믿는다. 훈련병, 이병, 일병을 거치는 것도 분명 모두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내무실에 있는 책 한 권을 보았다. 시간이 나면 틈틈이 그것을 읽어보려 한다. 아는 선배의 조언을 되새기고 있다. 군대에 적응하면서도 ‘나’의 본분과 본질을 잊지 않는 것.
(2006. 4. 2. 오후 7시 23분. 카투사 훈련소)
김형중의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카이스트에 처음 입학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의 설레임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그 때와 군대 생활을 시작하는 지금의 기분이 왜 이리 다른 걸까. 아니 다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즐겨보자.
너무 놀랐다. 나 정말 강했었구나. 그때는.
생각해 보면 훈련소에 있을 때와 이등병 때 만큼 내 자신에 대해서 만족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돌이켜 생각해 봐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괜찮은 인간이었다. 논산에서 중대장의 ‘정신교육’ 시간에 보급으로 받은 노트에 썼던 일기들이 지금 내 머리속에 있는 어떤 생각보다 현명하다. 카투사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던 시절 내 체력훈련 점수는 당시 나보다 덩치가 두 배는 컸던 미군들보다 훨씬 좋았다.
어이가 없다. 어쩌다 이렇게 약해졌을까.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를 부러워했을거다. 훈련병이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자유롭고, 원하는 대학원에 입학했고, 방학마다 세계 여러 곳으로 학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물론 한 가지 너무 커다랗게 비어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내가 너무 부럽다. 나 자신의 밝고 강함이 너무 부럽다. 이제는 그 비어있는 부분 때문에 그 때의 나를 다시는 찾을 수는 없게 된걸까.
아닐거라고 생각하자. 그 때의 밝음을 잘 생각해 보면 분명 답이 있을거다.
노력의 질
오늘 인상깊었던 것 두 가지.
1. 저녁 9시쯤 수학과 오피스로 걸어가던 길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4동 건물에서 혼자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평소 자주 보는 풍경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자정 무렵 오피스에서 나와 돌아가는 길에 그 사람이 똑같은 곡의 똑같은 부분을 ‘완전히 집중한 자세’로 연습하고 있어서 그 모습을 한참 훔쳐보았다.
2. 지난 일요일 방송한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이소라의 말.
질문: “왜 그렇게 노래에 집중하시나요?”
이소라: “못 해서요. 잘 하면 이만큼 집중하지는 않을 거에요. 못 해서 잘 하려고 집중해요.”
그 동안 ‘음악성이 너무 부족해서 피아노 연주가 잘 안 된다’ 같은 이야기를 떠벌이고 다녔던 것이 부끄럽다. 한 번에 몇 개의 건반을 누르던지간에 음 하나하나에 완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좋은 소리가 나올 리 만무하다.
꼭 음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물론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