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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실력
저녁을 오래 할 시간도 없고 의욕도 잘 나지 않아서 점심 때 먹고 남은 콩나물국 국물에 다시마랑 새우를 넣고 다시 끓인 다음 양파랑 냉동실에 얼어 있던 시금치를 대충 집어 넣어서 된장국을 끓이고, 썰어 둔 양파에 쇠고기 등심을 넣고 초간단 철판구이를 만들었다. 거기에 주말에 해 놓은 장조림이랑 콩나물 무침을 꺼내어 놓으니 꽤나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열 번 중 여덟 번은 집에서 밥을 먹고, 그런 생활을 일 년 넘게 하다보니 요리 실력이 늘기는 하는 것 같다. (나 같이 혼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요리가 늘었다’ 라는건 최고의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적당히 맛있는 음식을 빠른 시간 내에, 집에 있는 재료를 적절히 조합하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ㅋ) 특히 된장국 같은 건 전에는 recipe를 보고 그대로 해도 구수한 맛이 잘 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대충 보고 적당히 넣어도 맛이 괜찮아서 아주 만족하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내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순전히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어쨌든 국이랑 구이를 다 하는 데 20분 쯤 걸렸는데 예전 같으면 라면을 끓였을 만한 시간에 밥을 제대로 해 먹을 수 있으니 미국에서 외롭게 유학생활을 하는 것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달팽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패닉의 ‘달팽이’ 때문에 잠시 옛날 생각에 잠긴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우리 반의 젊은 담임 선생님은 자신의 교육 철학이 확실하고 특히 아이들의 감성 발달에 신경을 많이 쓰는 분이셔서 수업 중에도 사색하는 시간, 음악을 듣고 노래하는 시간 등을 많이 가지곤 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김종서의 ‘겨울비’를 틀어 놓고 창 밖을 보며 앉아 있기도 하고, 수업 시간이 남으면 서태지와 신해철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재미있는 분이셨다.
어딘가로 소풍을 가던 날, 버스 안에서 담임 선생님이 한 명씩 돌아가며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자고 제안하셨다. 그 때 내 맞은편에 한 여자 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그 아이가 이 ‘달팽이’를 불렀다. 얼굴이 아주 예쁘지도 않고 그 전까지 나랑 별로 이야기해 본 적도 없던 그야말로 평범한 아이었는데, 그 아이가 이 노래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그 아이에게 반해 버렸었다. 그렇게 소풍을 다녀오고 나서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은 금방 사라졌지만 이 노래는 계속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 이후 혼자서 이 ‘달팽이’를 들을 때면 철없이 뛰어놀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얼굴이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반 친구들, 그 친구들은 분명 지금은 그 때처럼 순수하고 맑은 모습은 아닐 거다. 담임 선생님도 지금은 열정으로 가득찬 젊은 선생님의 모습은 아니시겠지. 그렇다면, 나는 그 때처럼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Part two. Montréal.
첫 주가 끝난 주말에 몬트리올이 오타와에서 버스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 매일 긴 강의을 듣고 밤마다 강연자 중 한 분이셨던 서울대 교수님이 사 주신 맛있는 와인(Cabernet Sauvignon, 칠레산 Tarapaca 였던 기억한다)을 마신 덕분에, 막상 어딜 떠나려고 하니 귀찮기도 하고, 함께 같던 사람들도 그리 내켜하지 않는 눈치여서 주말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게 주말을 빈둥대며 보내고 2주간의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다시 몬트리올을 못 보고 돌아가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의 퀘벡-몬트리올 편을 찾아 보게 되면서 마지막 금요일 강의는 빠지기로 마음을 굳히고, 다음 날 혼자 터미널까지 40분 쯤을 걸어간 끝에 몬트리올행 버스에 올랐다.
처음 몬트리올 터미널에 도착한 순간 불어의 홍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다가 나의 짧은 불어 실력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던 반가운 단어가 보였는데, 바로 Bibliothèque(도서관) 이었다.
Grande Bibliothèque 라는 이름의 도서관은 Bibliothèque et Archives nationales du Québec (BAnQ) 의 중심 건물로서 몬트리올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현대적인 건물 디자인과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들어가자마자 사진기 셔터를 눌러 댔으나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비원의 제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층에서 몰래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Pardon.. Excusez-moi..)
도서관을 잠시 구경하고 나와 바로 Old Montreal 이라 불리는 몬트리올 구시가지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구시가지의 초입에 있는 Notre-Dame Basilica.
Notre-Dame Basilica 의 내부.
Saint Paul 거리. 갤러리로 가득한 이 곳은 걸어서 지나가기만 해도 예술의 향기가 묻어난다.
무척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쨍쨍한 햇볕이 났다가 다시 비가 오기를 반복하여 카메라를 보호하느라 애를 먹기는 했지만, 가끔씩 구름이 만족스러운 연출을 해 주어 사진 찍기에 나쁘지 않았다.
Saint Paul 거리는 이런 갤러리들로 가득하다. 넘치는 예술 작품들로 눈을 뗄 수 없는 곳.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갤러리들이 보일 때마다 들어가서 구경을 했는데, 그 중 이 작품은 너무 강렬하여 눈을 뗄 수 없었다. 제목은 Embrasser la Vie (Embracing Life) 였는데 혹시나 해서 가격을 보니 역시 내가 살 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정말 예뻤던 서점. 주인 아저씨가 매우 친절하여 사진 찍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Old Montreal 을 벗어나 지하철을 타고 굳이 찾아 간 St. Patrick’s Basilica 라는 성당이다. 관광객들이 많고 입장료를 받는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다르게 한적하고 조용한 성당이었다. 건물 내부장식도 화려하다기 보다는 깔끔한 느낌이었다.
Old Montreal 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인지 돌아가는 버스 시간까지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Saint-Louise Square 나 몬트리올의 신시가지를 둘러 보았지만 미국 뉴욕이나 보스턴의 공원이나 다운타운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따로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카메라를 보고 수줍어하던 지하 거리의 색소포니스트)
왕복 버스 시간을 제외하면 반나절이 조금 넘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몬트리올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되면 겨울에 차를 빌려 몬트리올에서 퀘벡 시까지 여유있게 둘러 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