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대학생이었지만 고작 만 열일곱에 불과했던 꼬꼬마 신입생 시절,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 하면서 지겹도록 했던 생각이다 –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누구나 고민하는 뻔한 이야기. 아마도 이런 제목의 책들도 여러 권 있을 것 같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비슷한 느낌이지만 좀 다른 듯하고.)

사실 순수하게 이 질문의 답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답들이 있다. 내 존재는 하찮으며 우주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으니 존재의 이유 따위는 없다는 우울한 대답부터 시작해서, 그와 반대로 나의 존재는 나 스스로에게는 우주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오만한 대답까지. 이 중에서 대충 아무거나 골라도 적당히 타협하다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이 대답들과 나의 일상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일상은 대부분 사소한 일들로 구성되는데, 내가 왜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떤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지, 어떤 음악이나 예술이 나를 울게 하는지, 이런 것들과 나의 존재의 이유를 연결시키기가 너무 어렵다. 그것들은 하찮은 유기물의 일생이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내 마음이(또는 인간 사회가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가.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 것에는 꽤 자신이 있다. 그런데 그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끝에는 더 큰 무언가가 있을까. 단순히 내가 충분히 갖지 못 해서 남들의 것이 모두 허상이라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그런 나의 못된 마음의 소산일 뿐이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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